현오 투어
호아루 탐방 본문
딘 Dinh 왕조의 창시자 딘보린丁部領은 966년 북베트남을 통일하고 중국으로부터 완전 독립을 하고자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연호를 타이빈太平이라 하면서 나라 이름을 '큰 나라'라는 의미로 다이꼬비엣大瞿越이라 정하였습니다.
그러고는 기존의 정치적 중심지였으며 자신과 같은 베트남 토착세력에 대하여 적대적인 다이라, 꼬로아를 버리고 탑 카르스트로 둘러싸여 있어 천혜의 요새인 자신의 고향 호아루華閭로 도읍을 정합니다.
그러면서 중국 송나라와의 친교도 유지하고 대내적으로는 국가체계를 정비하는 등 여러 면으로 유능한 지도자였으나 979년 장남과 함께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
그는 6살 짜리 아들 딘 또안만 남겨놓고 죽은 터라 그의 섭정을 하던 대장군 레 호안 Le Hoan이 천복天福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면서 레 Le 왕조를 열으니 이 왕조가 바로 Tien Le 즉 전 레前黎 왕조입니다.
그런데 송나라로서는 북베트남의 독립된 나라를 인정할 수 없어서 몇 차례 침공을 감행하였으나 레호안의 선방으로 무산되곤 하였습니다.
자신감이 붙은 레호안은 남베트남의 참파 원정까지도 감행하였으나 지방 호족 세력들의 준동을 막는데 역부족이어서 Le씨 왕조는 결국 3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대장군이었던 리 꽁우언李公蘊이 관리들과 승려들의 지지를 얻어 새 왕조를 여니 이것이 리Ly 왕조입니다.
그런데 리 꽁우언이 즉위를 하고 보니 이 호아루는 이전 딘 왕조와 전 레 왕조의 도읍지이긴 하나 워낙 단명한 국가인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또 지형적으로 볼 때 이 호아루는 자잘한 카르스트 산이 많아 외적의 침입을 막는 데는 유리하지만 델타의 서남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어 교통도 불편하고 경제적 중심지와는 너무 떨어져 있어 나라 발전에 저해가 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외세에 배타적인 토호세력이 많아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기에도 여건이 좋지 않아 결국 다이 라 성으로 천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레호안이 천도를 할 때 그는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면서 '다이라'라는 지명을 탕롱Thang Long 昇龍으로 개명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이 도시가 홍강 안쪽에 있다고 하여 오늘날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河內가 된 것입니다.
호아루에 있는 딘 왕조와 전 레 왕조의 두 사당은 17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의 궁궐은 남아 있지 않아 그 시절의 생생한 것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딘 왕조에서 전前 레 왕조를 거쳐 리 왕조에 이르러 이 호아루에서 탕롱 즉 하노이로 천도를 하기까지는 이 북베트남 즉 따이 꼬 비엣 大瞿越의 수도였다는 역사를 알고 접근한다면 좀 더 내용 있는 호아루 투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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